이세화(李世華 : 조선 숙종 연간)
조선 숙종때의 문신으로 호는 쌍백당(雙栢堂)이며 관향은 부평이다. 효종 11년(1676)에 문과에 급제하여 정언(正言), 장령(掌令)을 거쳐 현종12년(1673) 경상감사, 황해감사를 거쳐 숙종 10년(1684)에는 호군참판으로 영상 남구만(南九萬)을 따라 연경에 사은사로 다녀왔고, 전라도, 평안도, 함경도 관찰사를 역임한 뒤 고향인 부평으로 돌아왔다. 숙종 15년(1694) 기사환국(己巳換局)때에 인현왕후(仁顯王后)의 폐위를 반대하는 상소를 오두인(吳斗寅), 박태보(朴泰輔)와 함께 80여인의 연명으로 올려 친국(親鞫)을 당하고 정주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났다.
뒤에 숙종이 크게 뉘우쳐 대사간(大司諫)을 제수 호조판서로 발탁했으나 나가지 않았다. 그 뒤 왕후 북위도감 제조(製調)로 차제(差除)한다고 하여 상경하였다. 이어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겸 지경연사(知經筵事) 세자빈객(世子賓客)에 오르고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다. 이어 공조, 형조, 예조, 호조, 이조의 육조판서를 두루 역임하고 지중추부사 재임때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며 저서로 『쌍백당집(雙栢堂集)』을 남겼다. 경기도 파주 선유리 새능에 묘소가 위치하여 1981년 경기도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60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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