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경(金鉉暻 : 조선 고종 연간)
김현경은 강화읍 신문리 출신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진무천총(鎭無千摠)이 되었다.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그는 수백 명의 민병을 모집하여 프랑스군의 침공을 막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가, 프랑스군이 퇴각하자 추격전을 벌여 적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고종 4년(1867) 영장(營將)으로 천거되어, 조정의 명을 받아 손돌목을 가로질러 쇠줄을 쳐서 앞으로의 외양선(外洋船) 통행을 봉쇄했다. 고종 8년(1871) 미국 함대가 손돌목이 쇠줄로 봉쇄된 것을 알아차리고는 배로 북상하는 일을 단념하고 초지진을 공격해서 점령한 뒤, 외성을 따라 북침하여 공격하였다. 양군의 포성이 천지를 뒤흔드는 가운데, 조선군은 화력이 약하여 역부족으로 패하였다.
중군을 이끌고 좌충우돌하며 싸우던 어재연(魚在淵)이 전사하자 수없이 몰려 들어오는 적군을 맞아 김현경 영장은 칼을 뽑아들고 몇 명의 적군 수급을 베었으나, 드디어 역전 끝에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그의 영구는 처음 송해면 하도리에 안장되었다가, 1983년 그의 증손 영복(榮福)이 강화읍 국화리 선영으로 이장하였으며, 비석을 세워 그의 충혼을 기렸다. 나라에서는 공조참의를 추서하고 정문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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