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경(朴熙景 : 조선 고종 연간)
박희경은 철종 2년(1851)에 무과에 급제하여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하고, 가덕첨사(嘉德僉使)를 역임하였다. 고종 3년(1866) 병인양요 때에는 이면우(李勉宇)와 함께 적선에 이르러 프랑스군의 부당한 침입을 책망하고 물러가기를 종용하는 담판을 벌인 바, 프랑스군이 스스로 물러났다. 그 해 9월로 접어들어 프랑스군이 다시 침공해오자 그는 예하 군사를 이끌고 갑곶진으로 나아가 막으니, 포탄과 총탄이 섞여 비오듯 하는 가운데 목숨을 걸고 용감히 싸웠으나 힘이 부쳐 철수하고 말았다. 이에 조정에서는 그를 강화중군겸 수성장토포사(江華中軍兼 守城將討捕使)에 임명하고, 신임 강화유수 이장염(李章濂)을 순무영 유격장(巡撫營 遊擊將)으로 삼아 양헌수(梁憲洙)와 더불어 정족산성(鼎足山城)으로 적을 유인하여 크게 물리쳤다. 뒤에 영종첨사(永宗僉使)와 웅천현감(熊川縣監)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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