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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인물

신헌(申櫶 : 조선 고종 연간)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952
신헌은 전형적인 무관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이름난 학자들 문하에서 수학하여 유장(儒將)이란 소리를 들었다. 순조 28년(1828) 무과에 급제하여 본격적인 관직 생활을 해 가며 순조, 헌종, 철종, 고종 초에 걸쳐 중요 무반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고종 3년(1866) 병인양요 때에는 총융사(總戎使)로 강화의 염하(鹽河 : 강화해협)를 수비하여 난이 끝난 다음 좌참찬겸 훈련대장에 임명되고, 수뢰포(水雷砲)를 제작한 공으로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올랐다. 그 뒤 어영대장, 지행삼군부사(知行三軍府事), 판의금부사를 거쳐 고종 11년(1874) 진무사 겸 강화유수(鎭撫使兼江華留守)에 임명되어 정월에 부임하였다.
그는 당시 강화도의 전략상 중요성을 인식하고 연해의 요새지인 광성·덕진·초지진 등에 포대를 구축하여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운양호 사건’ 이듬해인 고종 13년(1876)에 병중이었음에도 판중추부사로 전권대관(全權大官)에 임명되어 강화도에서 일본의 전권변리대신(全權辨理大臣) 구로타[黑田淸隆]와 협상을 벌여 ‘강화도조약’을 체결, 조선의 개항에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 뒤 고종 19년(1882)에 역시 전권대관이 되어 미국의 슈펠트 제독과 ‘한미수호통상조약’을 맺었다. 시호는 ‘장숙(壯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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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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