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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인물

이용희(李容熙 : 조선 고종 연간)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696
이용희는 철종 12년(1861) 전라우도 수군절제사를 거쳐, 철종 14년(1863) 경상우도 병마절제사를 지냈다. 고종 3년(1886)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선봉이 되어 로즈 제독이 이끄는 프랑스 함대를 물리쳤다. 프랑스군이 강화부와 통진부를 습격하여 약탈과 방화를 자행하자 기보연해순무사중군(畿輔沿海巡撫使中軍)에 임명되어 2천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출정, 통진부에 진입하였다. 프랑스군이 정족산성을 정찰하고 전등사(傳燈寺)를 침략하자 천총(千摠) 양헌수(梁憲洙)를 보내어 정족산성에 잠복시키고, 프랑스군 6명을 죽여 프랑스 함대가 퇴각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이 공으로 양헌수가 형조판서에 발탁되었으며, 이듬해에는 이용희가 총융사 어영대사에 임명되었다.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시에는 김병학, 홍순목, 양헌수 등과 함께 개국을 반대하는 쇄국척화론을 고수하였다. 프랑스군은 강화에서 퇴각하기 전에 모든 건물에 불을 질러 강화행궁, 규장각 등을 소실케 하는 초토화 작전을 감행했다. 프랑스군이 물러간 후 이용희는 우선 옛 교육 시설인 향교(鄕校)가 불타 없어져 버린 것을 안타까이 생각하여 재건사업에 몰두하기도 하였다. 그러자 강화의 모든 유지, 선비가 이용희 유수의 장한 뜻을 기리어 사적비를 세웠다. 그의 시호는 ‘정의(靖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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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문화유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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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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