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석(朴啓石 : 조선 후기)
박계석은 강화 송해면 사람이다. 강화진위대 군인으로 근무하던 중, 1907년 8월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의병(義兵)으로 전환해 항전을 벌이게 되었다. 1908년 4월에는 박정빈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창의돌격대장(倡義突擊隊長) 김용기(金容基)와 함께 강화도 말도(末島)를 근거로 활동하였는데, 김덕순(金德順), 고부성(高夫成), 지홍일(池洪一) 등과 같이 총기를 휴대하고 1908년 8월까지 교동(喬桐), 개성(開城), 풍덕(豊德), 배천[白川], 연안(延安)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이어 같은 해 강화도 석포리(石浦里)에서 일본군 경위 밀정인 양학진(梁學辰)과 송대현(宋大鉉)을 처형하고, 10월까지 강화 및 임진강 하류 등지에서 친일파 제거와 정보 수집 및 적선(敵船) 습격 등의 활동을 하다가 전사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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