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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인물

김유의(金有義 : 일제시대)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882
김유의는 강화에서 출생한 여성 감리교 전도사이다. 강화에 교회가 설립되자 전도사업에 충실하다보니 문맹 퇴치에도 앞장서게 되었다. 1919년 서울을 위시해서 3·1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자, 이진형(李鎭亨) 목사, 유봉진(劉鳳鎭) 목사와 그의 부인 조인애(曺仁愛)와 함께 의논하여 교회 신도들을 모아 독립선언문 등사와 태극기 만들기의 임무를 띠고 태극기 5천 매를 만들어 배부하는 한편, 각 교회의 신도들에게 만세운동에 참가하도록 권유했다.
3월 18일 강화읍 거사 때 여성으로서 앞장서서 활약하다 왜경 순사보 김덕찬(金德贊)에게 끌려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른 후 12월 18일 출감했다. 그로부터 교회에 몸담고 있으면서 계속 항일운동과 함께 여성운동의 선도자로 교육사업에 매진하다 1947년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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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문화유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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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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