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응태(金應泰 : 1921∼1995년)
김응태는 인천 화평동 출신으로 일본 식민지 시대에는 인천우체국 직원으로 근무했으며, 1945년 8·15 광복과 함께 인천 언론계에 투신하여 대중일보 일선 기자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1950년 6·25 동란 후 인천신보 기자로 활약하여 역시 향토 언론계 민완기자로 알려졌다. 1955년 향토지 「주간인천」이 창간되면서 편집국장으로 자리를 잡았고, 1960년 「주간인천」이 인천신문으로 탈바꿈하면서 역시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그 간에 서울대학교 신문대학원을 이수할 기회를 가졌으며, 제3공화국이 되자 경기일보 편집국장에서 부사장 위치에 오르기도 했다. 지역 언론계의 기린아로서 초창기 인천 언론계의 원로 고일(高逸)의 대를 잇는 지사적(志士的) 언론인의 면모를 발휘했고 할 수 있다. 제3공화국 유신 시절에 1도1사주의(一道一社主義)라고 하는 지역 언론 말살정책으로 경기일보가 폐간될 당시에 언론계를 은퇴하고 한진계열 기업의 고문과 인하대학 사무처장으로 만년을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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