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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설화

족보를 위조해 왕의 외삼촌이 되다

출처
옛날 옛적에 인천은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2
조회수
4936
1849년 6월, 조선의 헌종 임금이 돌아가셨다. 대를 이을 아들 하나 없이 세상을 떠나자 왕실에서는 서둘러 강화도의 나무꾼인 원범이를 철종으로 세웠다.
원범의 집안은 원래 왕손이었다. 그러나 그가 왕이 될 때는 고아나 다름없는 처지였다. 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천주교 문제로 아버지와 형은 반역죄에 몰려 강화도로 귀양을 왔다가 역시 목숨을 잃게 되었다. 강화도에 있던 원범의 외할아버지 집안도 대를 이을 아들, 손자 하나 없는 아주 가난한 집안이었다.
철종 임금 시대(1849~1863)에는 대체로 나라가 불안하고 어수선한 때였다. 경기도 파주 근방에 염종수(廉宗秀)라는 한 남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성격이 교활하고 허풍스러운 데다 남다른 과시욕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장터에 나갔다가 새 임금 철종의 외가 집안이 용담(龍潭) 염(廉)씨라는 것을 알았다.
염종수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용담 염씨는 자신의 본관인 파주(坡州) 염씨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기 때문에 엄격히 따지면 상감마마와 자신은 한 뿌리가 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다음 날 염종수는 야심을 가지고 강화도로 달려갔다. 예상대로 철종의 외가는 자손이 끊어져 아무도 찾아볼 수 없었고 그 가족의 무덤도 돌보는 사람 하나 없는 폐허와 같았다. 염종수는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으~음, 내 아들을 상감마마 외할아버지(염성화)의 손자로 세운다. 그러면 내 아들은 상감마마의 외사촌이 되고…, 나는 상감의 외삼촌이 된다?”
염종수는 한양으로 돌아오자 곧 용담 염씨의 족보를 구해 그것을 고치는 작업에 착수했다. 족보를 고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남의 이름을 지우고 자신의 이름을 끼워 넣으면 되는 것이었다. 결국 철종의 외할아버지인 염성화의 가계가 자신의 가계에서 갈라져 나간 것으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철종 임금에게 위조된 족보와 함께 상소를 올렸다.
“상감마마의 외갓집이 너무 살림이 어렵고 후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같은 염씨로 양자를 들여 새로이 일가를 이루어야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에 저의 아들을 양손자로 세워 끊어진 대를 잇게 하고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하고자 하오니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친척 하나 없어 항상 외로움을 느끼던 철종으로서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곧 족보를 확인한 후 철종은 염종수 부자를 대궐로 불렀다. 느닷없이 외사촌 형제가 하나 생긴 것이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의논해 주시오. 내가 도울 것이요.”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철종은 염종수를 외삼촌이라 부르며 전라도수군절도사라는 벼슬도 함께 내렸다. 염종수는 이제 자신의 집안이 된 철종 외가의 묘역을 단장하기 위해 곧 강화도로 향했다. 그리고는 철종의 외할아버지 묘 앞에 비석을 세우고 거기에다 원래의 용담(龍潭)이라는 글자 대신에 자신의 본관인 파주(坡州)라고 새겨 넣었다. 그리고 이마의 땀을 닦으며,
“나는 이제 완전히 이 나라 상감의 외삼촌이 된 것이야.”
혼자 빙그레 웃었다.
철종의 외삼촌이자 높은 벼슬까지 하게 된 염종수는 갖은 횡포를 부리기 시작했다. 백성들로부터 재물을 빼앗고 술과 여자에 파묻혀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진실은 밝혀지는 법. 몇 년 후 그의 이상스런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던 강화도의 파주 염씨 성을 가진 염보길이라는 사람이 그의 가짜 행동을 들춰냈다. 철종은 수치감으로 몸을 떠는 한편,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그리고 어머님에 대한 죄책감과 조상에 대한 죄책감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곧 염종수는 철종 앞으로 끌려나왔다.
“저 놈을… 저 놈을… 내 앞에서… 끌어내라.”
철종은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소식을 들은 강화도 고을 원님은 사람을 보내 철종 외가 염성화의 비문의 파주라는 글자를 지우고 용담이란 글자로 새겨 넣었다.
지금 강화도에 있는 염성화의 비석을 보면 파주(坡州)라는 글자를 깎아낸 오목한 자리에 용담(龍潭)이라고 새로 새긴 글자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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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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