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인천인물

구원일(具元一 : 조선 인조 연간)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642
구원일은 강화군 불은면 고능리 태생이며 무과에 올라 강화 천총(千摠)이 되어 무술 연마에 정려하던 중 정축란(丁丑亂)을 맞았다. 청나라 군사가 갑곶강을 건넜다는 소식을 접하고 강화좌부천총(江華左部千摠)으로서 휘하 병졸을 이끌고 갑곶진으로 달려갔다. 이때 강화유수 장신(張紳)이 배를 가리산 아래에 대고 방어하지 않은 채 손을 놓고 있는 것을 보고 분개하여 크게 꾸짖으며 고함을 치자 유수 장신이 오히려 그를 붙잡으려 했다. 이에 구원일은 칼을 빼어들고 호통치며 말하기를, “네 이놈, 상감의 녹을 먹으면서 나라를 져버리는 죄가 하늘에 닿았도다. 너 같은 놈에게 죽을 수 있느냐!”고 일갈한 다음 남한산성을 향해 통곡 사배(四拜)하고 다시, “신이 불충하여 한 칼로 적을 섬멸하지 못하고 장신 같은 놈마저 처벌하여 죽이지 못함이 한입니다.”고 외친 다음 칼을 뽑아든 채 물로 뛰어들어 자결하였다.
그후 나라에서 병조참의에 추증하고, 인조 20년(1642) 강화도 사람들이 세운 사당인 현충사에 김상용(金尙容) 등 순절한 이들과 함께 제향되었는데, 효종 8년(1657)에 충렬사(忠烈祠)로 사액되었다. 또한 표충단(表忠壇)에도 배향되었으며, 강화읍 용정리에는 묘비가 있다.
공공누리
OPEN 공공누리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변경금지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료관리담당자
  • 담당부서 문화유산과
  • 문의처 032-440-838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