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생(高封生 : 조선 인조 연간)
고봉생은 교동 토박이로 광해군과 인조 때의 관노(官奴)였다. 광해군 7년(1615) 능창대군(綾昌大君) 추대사건으로 교동으로 능창대군이 귀양보내졌을 때, 능창대군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 보고해야 하는 수직(守直)으로 고봉생이 지목되었는데 고봉생은 능창대군을 감시하기는커녕 그에게 감화되어 오히려 돕는 일을 하게 되었다. 능창대군의 식사는 석회수(石灰水)로 밥을 지어 들여보내게 했으나, 고봉생은 자기의 밥을 덜어 대군에게 대접하고 석회수밥은 해수(海水)에 빨아서 자신이 먹곤 했다. 어느 날 이이첨 앞잡이가 몰려와서 문과 창을 못질하여 잠그고 섶을 쌓아 불을 때고 있으므로 대군은 자기를 태워 죽이는 것으로 알고 영결(永訣)을 고하는 편지 한장을 써서 봉생에게 주며, “어떻게 해서라도 이 글이 우리 부모님 앞에 닿도록 전해달라”고 간곡히 당부하고 자결하였다. 봉생은 능창대군이 가여워 그 서신을 몰래 땅에 묻었다가 인조반정 뒤 왕에게 갖다 바치니 왕이 특별히 관노를 면하게 하고 후한 상을 내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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