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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인물

심현(沈턀 : 조선 인조 연간)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637
심현은 여러 수령을 지내고 돈녕부 도정에 이르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종묘사직을 따라 강화로 피난했다. 그러나 얼마 안되어 갑곶진이 무너지고 강화읍성마저 무너졌다는 청천벽력의 비보를 접하자 종형 숙(?)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싸우다 죽으려 하던 차에 그의 종자 동구(東龜)가 배를 끌고 와서 피신하기를 권하였다. 그는 의연히 물리치고, “국가가 패망하는 이 마당에 내 어찌 살기를 도모하리오”라고 외친 다음 임금이 계신 남한산성을 향하여 네번 절하고, 임금께 드리는 유소문(遺疏文)을 써서 외손자 박장원(朴長遠)에게 전하고 그의 부인 송씨(宋氏)와 더불어 진강(鎭江 : 良道)에 빠져 순절하였다. 그후 이조판서에 증직되었고, 시호는 ‘충렬(忠烈)’이며 충렬사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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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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