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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인물

윤집(尹集 : 조선 인조 연간)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901
윤집은 남양부사 윤계의 동생으로 인조 9년(1631) 별시문과 을과로 급제하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고 국왕이 남한산성에서 청나라 군사에게 포위되었을 때 화의를 주장하는 최명길(崔鳴吉)에 반대하고 오달제(吳達濟)와 더불어 끝까지 척화를 주장하였다.
화의가 성립되고 척화론자의 처단을 주장하는 청나라의 요구대로 오달제와 함께 북쪽으로 끌려가면서도 조금도 절개를 굽히지 않아 오히려 적군이 감복하여 존경하기조차 하였다. 그러나 심양에 붙잡혀 가서 고문과 회유를 당하고도 끝내 굴하지 않은 탓으로 심양 서문밖에 끌려가 처형당했다. 세상에서는 오달제, 홍익한(洪翼漢)과 더불어 삼학사로 존칭하게 되었다. 영의정에 추정되고 시호는 ‘충정(忠貞)’이다. 강화 충려사, 광주 절현사(節顯祠) 등 여러 사원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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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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