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규(鄭世規 : 조선 현종 연간)
정세규는 사마시에 합격하고 문음(門陰)으로 의금부도사를 거쳐 여러 관직을 옮겨다녔다. 인조 14년(1636)에는 조신(朝臣)들의 추천을 받아 충청도 관찰사로 특진되었다. 그 해 겨울 병자호란이 일어나 왕이 남한산성에서 포위되자 근왕병을 이끌고 포위된 남한산성을 향하여 진격하다가 용인, 험천(險川)에서 적의 기습을 받고 대패했다. 그러나 그의 충성심이 남다른 바를 인정받아 개성유수를 거쳐 공조판서에 임명됐다. 이후 형조판서가 되었다가 여러 관직을 전전하던 끝에 대사헌, 우참찬,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효종 5년(1654) 강화유수가 되어 승천(昇天), 연미(燕尾), 갑곶(甲串), 광성(廣城) 등에 진(鎭)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 문음(門陰) 출신으로 육경에 오른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시호는 ‘경헌(景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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