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방(朴熙房 : 조선 고종 연간)
박희방은 고종 때 부평부사(富平府使)로 있으면서 인천이 외세의 강요로 개항하게 될 무렵 계양산 경명현(景明峴 : 징맹이고개) 좌우에 중심성(衆心城)을 축조하고 공해루(控海樓)를 지었다. 이 중심성을 지을 때의 기금은 국비인 공금과 주민들로부터 자진 염출된 성금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까닭에 그야말로 민(民)과 관(官)이 혼연일체가 되어 출연한 자주국방의 빛나는 기념비가 되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 때 세워졌던 기념비는 일제 36년 동안에 훼손, 도괴(倒壞)되었고, 해방 후 돌보는 이 없을 때 성벽이 외국 군 기지의 초석으로 사용되었다는 설이 있으며, 현재는 기둥 초석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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