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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인물

양헌수(梁憲洙 : 조선 고종 연간)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1637
양헌수는 헌종 14년(1848) 무과에 급제하고 관직 생활을 거듭하여, 고종 2년(1865)에는 제주목사로 임명되어 제주도민의 칭송이 높도록 선정을 베풀었고, 병인양요를 당해서는 정족산성(鼎足山城 : 江華 三郞城)의 수성장(守城將)이 되었다. 5백여 군사들을 이끌고 광성진 손돌목을 건너 정족산성을 지키던 중, 10월 3일 프랑스 함대의 로즈 제독이 보낸 해군 대령 올리비에의 군사 2백여 명의 침공을 받았다. 치열한 전투 끝에 프랑스군 6명을 전사시키고 많은 부상자를 냈으며, 대다수의 무기를 노획하는 전과를 올려 프랑스군이 패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공로로 한성부 좌윤에 임명되었다가, 1869년 황해도 병마절도사로 부임하였다. 1876년 강화도조약 당시에는 김병학(金炳學), 홍순목(洪淳穆), 이용희 등과 함께 개국을 반대하는 척화론을 끝까지 주장하였다. 시호는 ‘충장(忠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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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문화유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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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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