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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인물

염성오(廉成五 : 1877∼1947년)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718
염성오는 강화군 길상면 사람으로 선두리에 살면서 이 곳의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1919년 3월 9일 유봉진(劉鳳鎭) 등이 주도하는 독립만세운동 계획에 찬동하여 3월 18일을 거사일로 약정하고 동지 규합과 사전 준비에 참가하여 자택에서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그리하여 3월 18일 강화읍내 장날에 모인 1만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운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에 검거되었다. 이 일로 인하여 이 해 12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과 벌금 20원을 언도받고 항소하였으나, 1920년 3월 1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년형이 확정되어 1년 2개월 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 공훈을 기리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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