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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인물

윤경기(尹敬基 : 1919∼1995년)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799
윤경기는 강화 양도면 삼흥리에서 생장하였다. 서울에 가서 고학할 때, 항일 지하단체 조직에 가담하여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 선생의 ‘조선 청년의 살 길’이라는 책자를 탐독하고 더욱 열의를 기울여 동지 규합에 암약하면서 미처 깨우치지 못한 젊은이들을 계도하였다. 그런 가운데 일제가 조선사상범 구금령을 공포하고 간악한 수법으로 우리 젊은이들을 감시하며 사찰에 착수하여 드디어 서울 중심의 동지들이 한 둘씩 체포되던 끝에, 연루자로 지목되어 1944년 12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강화경찰서에 검거되었다. 그 즉시 경기도경 고등계로 이첩되어 갖은 고문을 받으며 옥고를 치르고 1945년 해방과 함께 풀려났다.
해방 후 정부 수립이 되면서 회사원으로, 지방 공무원으로 충실히 복무하던 끝에 교육자로 진출하여 10여 년 간 봉사했으며, 지역사회 인사들의 추대로 동광중학교 재단을 인수받아 30여 년 간 재단이사장을 역임하면서 양도면 중등교육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또한 강화군 체육회와 그 밖의 봉사단체장으로도 널리 활약하였으며, 강화군 산림조합장으로 산림녹화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강화농지개량조합장까지도 맡아서 수리시설 확충에 정려하여 지역사회 발전과 낙후된 농촌부흥사업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리하여 만년에는 강화의 원로로서 모든 군민의 숭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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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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