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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인물

전인순(全寅淳 : 1887∼1960년)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850
전인순은 한학자로 유명했으며, 동산서원(銅山書院)이라는 한학당(漢學堂)을 세우고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여 수백 명의 학도를 배출시켰다. 그의 교육 방침은 민족의식 고취가 근간을 이루었으며, 3·1 만세운동 때에는 주민을 주도하여 만세운동을 이끌다가 일본 경찰에게 검거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고 풀려났다. 그 이후로는 요시찰인으로 지목되어 박해를 받아왔다.
그는 평생에 걸쳐 무보수로 제자를 훈육하였다. 그 때문에 가세가 매우 곤궁하였으나 오로지 민족사상 고취에 전념하며 생애를 보냈고 74세를 일기로 기세하였다. 1984년 지역 주민들이 정성을 모아 양도면 인산리 비선거리에 송덕비를 세워 그의 덕행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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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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