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균(林榮均 : 1903∼1969년)
임영균은 인천 출신으로 1927년 경성치의전(京城齒醫專)을 졸업하고 인천 최초의 치과병원을 개설하였다. 이후 40여 년 간 치과의의 길을 걸어 경기치과의협회장을 지냈다. 어린 학생 시절에 3·1 운동에 참가하여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며, 1926년 진우촌(秦雨村), 정암(鄭岩) 등과 ‘칠면구락부(七面俱樂部)’를 조직, 연극활동을 하기도 했다. 1954년 『주간인천』의 발행인 겸 사장으로 활동했다. 장남인 명진(明鎭)은 외교관 생활을 마치고 화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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