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인천인물

전학준(全學俊·Eug Deneax : 1873∼1949년)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2110
전학준 신부(神父)는 프랑스의 부유한 은행가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파리 외방전교회(外方傳敎會)의 선교 사명을 띠고 1900년에 약관 27세로 인천에 당도했다. 그는 도착 즉시로 답동(沓洞) 천주교성당에서 운영해 갈 인천박문학교를 설립하고 천주교 신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자녀들에게 초급 과정의 교육을 시키는 일부터 시작했다. 1904년에는 비로소 답동성당 본당 신부로 취임했고, 이어 1917년에는 남녀 두 학교를 합쳐 인천박문학교 설립자 겸 교장에 취임했다. 이 학교의 특징은 제3자의 도움없이 오로지 전 신부가 상속받은 유산으로만 이끌어 가는 데 있었다. 학교가 본궤도에 올라서자 1930년에는 바오로수녀원을 비롯하여 고아원 등 본당의 기반을 이루는 모든 시설을 갖추고 대규모로 증축을 했다.
역시 사재(私財)를 기울여 용현동과 영종도(永宗島) 등지에 20여만 평의 농토를 마련하여 보육원에 기증하고 보육원 운영을 위한 재정적 기반을 굳혀놓았다. 1937년에는 증가 일로에 있는 신자들을 위하여 오늘에 보는 바와 같은 큰 성당 건물을 준건하였고, 3층으로 된 현대식 해성병원(海星病院)을 개설했으며 또한 박문유치원을 설립 개원했다. 이렇듯 많은 사재를 기울여 이 고장을 위해 헌신하면서 육영가로서, 불쌍한 사람들의 어버이로서, 수도원의 지도 성직자로서 오로지 영생 구제에 전념하다가 74세로 인천에서 생을 마쳤다.
공공누리
OPEN 공공누리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변경금지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료관리담당자
  • 담당부서 문화유산과
  • 문의처 032-440-838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