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기(朱元基 : 1910∼198년)
주원기는 앞의 주명기를 필두로 한 주씨 가문의 4형제 중 막내로, 인천상업학교(현 인고)를 졸업한 뒤 일찍부터 가업인 정미소 경영에 임했다. 타고난 경영 수완으로 환일정미소(丸一精米所)와 그 후의 협신정미소(協信精米所)를 불황 속에서도 지속 유지시켜 가는 데 남다른 능력을 발휘했다. 뿐만 아니라, 가업에 혼신을 다하면서도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했는데, 초대 인천시의회에 진출하여 교육문화분과 위원장을 맡아 했고, 이어 경기도의회에도 진출하여 부의장으로 선출되어 활약하기도 했다. 또한 소년군(보이스카웃)의 간부로 활약해 온 주원기는 해방 후 곽상훈(郭尙勳) 선생이 정계에 진출하자 보이스카웃 운동을 인계받아 중앙본부 사무총장을 맡기도 했으며, 해외에서 열린 국제대회에 대표로서 인솔해 가기도 해서 그 공로로 국민훈장을 포상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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