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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촌(秦雨村 : 생몰 미상)

작성자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1394

진우촌은 인천 태생으로 본명은 종혁(宗赫)이고 우촌은 예명이다. 일본 물산장려회 희곡 작품 모집에 응모한 희곡 「암탉」이 당선되어 희곡작가로 등단하였다. 조부 학명(學明)이 구한국 시대의 관비 유학생으로 도일(渡日)한 바 있었고, 부친 진수(秦秀)는 1895년 신학제(新學制) 포고와 함께 설립된 관립외국어학교에서 독일어를 배우고 인천해관(仁川海關)의 통역을 맡아 했다. 1926년 배우이며 연출가인 정암(鄭岩)과 무대장치가인 원우전(元雨田), 언론인 고일(高逸)과 ‘칠면구락부(七面俱樂部)’를 설립하여 향토 연극운동을 전개했다. 한편으로 동인지 「습작시대(習作時代)」를 간행하기도 했다. 8·15광복 후에도 극단 ‘고향’을 창단하여 활동했다. 작품으로 「암탉」, 「두뇌수술」, 「춘향전」(각색), 「피를 파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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