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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설화

용유도를 지킨 비포 장군 바위

출처
옛날 옛적에 인천은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2
조회수
3229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을 받은 왜군이 우리 나라로 쳐들어왔다. 이를 전혀 대비하지 못했던 우리 나라는 패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왜적들은 영종도에도 침입해서 온갖 곡식과 가축들은 물론 진기한 보물이나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를 약탈하고 민가에 불을 지르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질렀다. 게다가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고 부녀자들을 희롱하기까지 했다.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왜적과 대항할 수는 없었다. 그저 마음속으로나마 어서 왜적이 패퇴하여 물러가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어느 날 왜적이 돌다리를 건너 삼목도까지 점령하고 서쪽 해변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용유도를 발견했다. 왜장이 용유도를 보니 마치 꿈틀거리는 용의 기상을 보는 듯하여 매우 탐이 났다. 그는 곧 부하들을 모아 용유도를 점령하기 위해 회의를 열었다.
그런데 삼목도와 용유도 사이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 두섬 사이는 밀물에 물이 들어올 때 다른 곳과는 달리 양쪽에서 물이 밀어닥쳐 물살이 센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는 왜적들은 용유도를 점령해야겠다는 급한 욕심에 서둘러 침략을 시도하게 되었다. 왜장은 용유도를 영종도와 마찬가지로 쉽게 점령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출병하는 날은 하늘이 매우 맑고 바람 한 점 없었기에 왜적들은 하늘도 자기들을 돕는다고 생각했다. 마침 그때는 간조 때라 물이 모두 빠져 있었다. 왜적들은 병장기를 들고 도보로 건너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짙은 안개가 끼기 시작하더니 안개 사이로 커다란 장수가 어렴풋하게 보이고 그 뒤로 많은 병사들이 보였다.
맨 앞에 서서 왜병들을 인솔하던 왜장은 깜짝 놀라 멈춰 섰다. 함정에 빠진 것으로 판단하여 군사들을 후퇴시키려 했다. 이때 갑자기 물살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왜적들은 달아나려고 발버둥 쳤으나 앞에서도 물이 밀려오고 뒤에서도 물이 밀려들어 오도 가도 못하는 형편이 되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여기저기서 아우성을 치며 왜적들은 하나 둘씩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용유도를 점령하려던 왜군은 거의 다 목숨을 잃었다.
용유도를 지켰던 용맹스러운 장군은 실제 사람이 아니라 사람모양을 한 커다란 바위였고 수많은 병사들은 바위를 중심으로 놀고 있었던 갈매기들이었는데 왜적들이 안개가 낀 상태에서 착각했던 것이었다.
이때부터 이 바위를 비포장군(飛捕將軍) 또는 장군석(將軍石)이라 불렸으며 지금도 용유도를 지키듯 당당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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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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